호수 앞에서 하룻밤

결혼 준비를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의 관심사는 신혼여행지였다. 서로 가고 싶은 신혼여행지를 늘어놓다가 스치듯 캐나다 이야기가 나왔다. 레이크 루이즈가 그렇게 아름답다면서. 평소에도 자연 경관이 멋진 곳을 선호하기에 스위스를 주장하던 나는 레이크 루이즈의 겨울 사진을 보고 그대로 홀려버렸다. 그리고 그 호수 바로 앞에 있는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즈가 눈에 들어왔다. 그 경치를 보면서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시 찾아본 레이크뷰 객실은 1박에 350만 원이 넘었다. 와이프랑 둘 다 그 객실에 너무 묵고 싶었지만, 하루 숙박에 이 정도 돈을 태우기는 신혼여행 버프를 받아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호수를 곁에 두고 오래 보자는 마음에 마운틴뷰로 1박을 예약했다. 대신 호텔의 애프터눈 티를 즐기면서 호수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미리 호텔로 메일을 보내 애프터눈 티 예약까지 마치고 갔다.

로키산맥 안의 레이크 루이즈

밴프로 들어가기 위해 캘거리에서 렌터카를 빌렸다. 캐나다 1번 국도의 탁 트인 평지를 달리다 어느 순간 저 끝에 거대한 로키산맥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자연 경관에 압도당하면서, 이동의 피로에 지친 와이프와 함께 레이크 루이즈로 향했다.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즈는 밴프 국립공원 안의 레이크 루이즈 호숫가에 있다. 시작은 1890년 캐나다 태평양 철도가 지은 작은 통나무 샬레였다. 베란다와 거실, 부엌에 열두 명이 머물 침상을 갖춘 단층 건물이었는데, 처음의 샬레는 화재로 사라졌고 새로 지은 건물을 거듭 확장하면서 지금의 호텔로 이어졌다. 호수를 눈앞에 두고 머무는 입지는 그때부터 이곳의 매력이었다.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즈 이름이 적힌 아치형 캐노피와 석조 외벽
호수 쪽 출입구에 걸린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즈의 이름.

체크인 전에 즐긴 애프터눈 티

예약한 애프터눈 티 시간에는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체크인 대신 1층 레스토랑으로 가면서 창문 너머로 레이크 루이즈를 봤는데, 감탄만 나왔다. 옥빛의 푸른 호수 끝자락에 걸터앉은 산봉우리, 그 끝에 이어지는 만년설까지. 비현실적인 풍광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경치를 매일 보는 이곳 사람들이 살짝은 부러워졌다.

당시 1층 로비는 투숙객과 애프터눈 티 예약자만 다닐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한다. 사람이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히 프라이빗한 분위기였다. 티를 즐기는 사람,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 저마다의 여유와 즐거움이 느껴졌다. 그 속에서 달콤쌉싸름한 티를 마시며 나도 잠깐의 여유를 즐겼던 것 같다.

아치형 창과 파란 카펫, 소파와 샹들리에가 있는 호텔 공용 공간
파란 카펫과 소파가 놓인 호텔의 공용 공간.
레이크 루이즈가 보이는 창가에 놓인 차와 애프터눈 티 트레이
차와 빵을 즐기던 테이블 너머로 호수가 보였다.
아치형 창과 샹들리에, 곡선형 카운터와 테이블이 있는 호텔 로비 바
아치형 창과 샹들리에가 있는 로비 바.

작은 선물로 받은 레이크뷰

티타임을 마치고 체크인을 하러 갔다. 예약자 이름을 말하고 여권을 건네며 체크인을 진행하던 중 와이프가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지금 신혼여행으로 여기 온 거야.” 직원은 웃으면서 축하의 말을 건넸고, 작은 선물이라며 오기 전부터 우리가 원했던 레이크뷰(!)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기쁜 마음에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빠른 걸음으로 배정받은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니 창밖으로 티타임 때 보았던 호수가 보였다. 너무 좋아서 둘 다 바로 창문으로 달려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호수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엄청 찍어주었다.

객실 창가에 걸터앉아 휴대전화로 레이크 루이즈를 찍는 와이프의 뒷모습
창가에 걸터앉아 호수를 담는 와이프.

그러고 나서 방을 천천히 둘러봤다. 방도 엄청 넓게 느껴졌다. 카펫 색은 튀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캐리어를 펼쳐 둘 공간도, 룸서비스를 시켜 먹을 공간도 충분했다. 침대는 딱 적당한 크기였는데, 이보다 작았으면 작다고 느꼈을 것 같다. 욕실도 튀는 데 없이 무난했다.

짐 풀 새도 없이 누워서 호수를 보다가 낮잠까지 잤다. 호수를 보며 잠에 드는 것. 이 호텔을 예약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을까.

흰 침구와 침대 머리맡 조명, 벽걸이 텔레비전이 있는 객실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객실.
침대와 창가 테이블, 창밖의 레이크 루이즈가 함께 보이는 객실
한잠 자고난 뒤 널부러진 침대와 호수

저녁은 룸서비스로

주변에 마땅히 갈 만한 식당이 없어서 저녁은 룸서비스로 해결하기로 했다. 바베큐 돼지 등갈비와 치킨 텐더, 시저 샐러드를 시켰고 세 음식 다 나무랄 데 없이 맛있었다.

객실 테이블에 놓인 치킨 텐더와 시저 샐러드, 작은 소스 그릇
룸서비스로 시킨 치킨 텐더와 시저 샐러드.
소스를 바른 바베큐 돼지 등갈비와 곁들임 음식이 담긴 룸서비스 접시
저녁으로 주문한 바베큐 돼지 등갈비.

아직 환한 저녁의 호숫가

저녁까지 먹었어도 7월의 밴프는 아직 밝았다. 여름에는 해가 엄청 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그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주변이 여전히 환해서 호숫가를 따라 걸어보자고 했다.

호텔 앞에는 호숫가를 따라 걷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보트하우스 반대편 산책로를 따라 쭉 걷다 보면 레이크 루이즈와 함께 호텔의 전경도 펼쳐진다. 호숫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밝은 외벽과 초록빛 지붕, 그 아래 줄지어 난 객실 창문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는 곰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도 있었기에 너무 늦지 않게 호텔로 호다닥 돌아와 잠을 청했다.

호텔 정원에서 레이크 루이즈 호숫가로 이어지는 길과 그 뒤의 산
호숫가로 이어지는 호텔 앞의 길.
늦은 저녁의 레이크 루이즈와 호수를 둘러싼 산, 구름 낀 하늘
늦은 저녁에도 호수와 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음 날 아침, 모레인 호수로

다음 날 아침에는 호텔에서 예약한 투어로 모레인 호수에 다녀왔다. 일반 차량의 진입이 제한되는 곳이라 공원 셔틀이나 허가받은 운송업체 등을 이용해야 했는데, 다행히 호텔에서 예약할 수 있었다. 전날 예약을 마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셔틀을 타니 모레인 호수까지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거대한 산과 숲에 둘러싸인 푸른 모레인 호수와 물에 비친 산의 모습
호텔에서 예약한 아침 투어로 다녀온 모레인 호수.

겨울에도 다시 한번

호텔은 정말 훌륭했다. 또 어디에서 이렇게 멋진 호수를 곁에 두고 산책하고, 잠들 수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겨울에도 다시 와보고 싶다. 내가 반했던 겨울의 레이크 루이즈가 어떤 모습인지, 여러분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사진 한 장을 남기며 마쳐본다.

푸른 저녁빛 아래 눈 쌓인 레이크 루이즈 보트하우스가 노랗게 빛나고, 뒤로 설산과 눈 덮인 숲이 펼쳐져 호수에 비친 풍경
눈 쌓인 보트하우스의 따뜻한 불빛, 그 뒤로 펼쳐진 설산. 참고 사진: Edwin Martinez / Fotografia.